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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를 넘어 기본사회로
  • 등록일

    2026.04.10

게재: 한국농어민신문 | 승인 2026.04.10 18:48
필자: 황영모 전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농어민신문]


 

돌봄을 개인의 몫으로 두지 않고 사회화
기본소득이 생활·삶 설계돕는 실효적 방안
서비스 방식 바꾸고 실행방식·주체 전환을

 

 

‘기본사회’로의 이행을 전면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이 어느 때 보다 높다. ‘복지국가’ 실현을 넘어 ‘더 깊고 넓게, 더 효용감 높게’ 지속가능하게 돌보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자는 요구이다. 기본사회는 그동안 정치적 공간에서, 학술적 자리에서, 지역적 현장에서 다층적으로 논의되고 구체적인 정책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다.

 

복지국가는 ‘국가가 책임지고, 국민을 돌보고, 권리를 제도화하는 사회’이다(정균승, 2025). 우리 사회에서 복지국가를 확대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사회질서로 여러 제약이 도드라지고 있다. 일자리는 갈수록 불안정하고, 지역은 과소화를 넘어 공동화(空同化)되고 있다. 소득·자산·생활·지역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사회적 배제가 일상화되었다. 기술의 수준과 속도는 행정의 업무 방식을 뛰어 넘는다. 우리 생활을 결정짓는 환경의 ‘불확실성’은 일상이 되었다. 이전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그동안 제도적으로 복지 지원을 꾸준히 늘려 왔다. 그러나 ‘제공자-수혜자’라는 구조의 경직성으로 정책의 ‘사각지대 그늘’은 깊기만 하다. 복지 대상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낙인도 감수해야 한다. 지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버텨내야 한다. 그래서 ‘돌봄의 경계’에 놓인 이웃이 많다. 사회복지 정책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일정한 기준으로 대상을 정하고 서비스를 전달한다. 시설과 전달체계 중심으로 하다 보니 ‘담당 주체와 사회적 관계’는 부차적으로 다루어졌다. ‘공급자-수혜자, 시설-서비스, 행정-제공기관’ 등으로 이분화 된다. 이른바 ‘복지국가의 피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복지국가 전략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지역사회 역할과 관계 맺기를 더욱 늘려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제 ‘위험을 분산’하는 복지국가 방식을 넘어 ‘삶을 공유하는 터전’으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기본사회는 돌봄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고 ‘사회화’하는 것을 지향한다(정균승, 2005). 취약한 사람조차 불리하지 않을 것, 주권자 권리가 보장될 것, 동등한 기회로 역량을 높일 수 있을 것, 사회적·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생산·소비가 이뤄지는 구조이다(민주연구원, 2024). 이것이 기본사회의 이미지이자 지향점이다. 정부는 대통령이 위원장이 되는 ‘기본사회위원회’를 통해 기본사회로의 이행 추진을 시작하였다. 정부 부처 대부분이 참여한다. 12개의 분야로 나누어 기본사회 삶의 기반, 사회서비스·협력 등 전략과 정책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관련 법률의 제정도 추진 중이다.

 

이제 ‘기본사회’는 현재를 살아내는 대한민국의 핵심 의제이다. 국민주권 정부의 국정을 대표하는 사회혁신 전략으로 위치한다. 기본사회의 핵심은 크게 3가지 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기본소득’이다. 개인의 소득 부족분을 보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생활과 삶을 설계하도록 재구성하는 실효적 방안으로 기본소득이 강조된다. 지방소멸 위기에서 ‘지역지킴이’ 역할을 하는 농촌주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이유이다. 지금 당장 재원의 제약은 크다. 그러나 햇빛·바람 등 재생에너지는 물론 AI·데이터·토지·자원 등이 지역사회 공유부(共有富)가 되어 배당되는 구조로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그리고 지역순환경제의 효과를 현실로 증명해 낼 것이다.

 

둘째, ‘서비스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행정중심·시설중심·전달체계를 넘어 생활 속에 직접 들어가는 방식을 취한다. 주거·보건·의료·돌봄·교육·에너지·교통·통신·안전·일자리·금융·문화·기술 등 영역이 매우 넓다. 기본적인 생활 여건 보장이 안 되는 삶은 개인은 물론 공동체도 무너트린다. 국가최저기준(national minimum)을 넘는 진보된 수준이 되어야 한다. 기본서비스는 사회의 발전 정도·수준을 보여주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이 속에서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셋째, 기본사회는 ‘실행방식과 주체’의 전환을 전제로 한다. 정부의 설계주의적 전략 방식은 현실에서 많은 한계에 직면했다. 지방정부·지역사회·시민사회 등이 사회연대경제 방식으로 ‘기술’을 매개로 ‘관계’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기본사회는 새로운 이상향이 아니라 삶터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생활에서, 지역에서 여러 작은 실천 등이 모여 일정한 흐름을 만들고 사회의 수준을 한 단계 한 단계 진전시켜 나갈 것이다.

 

현실에서 ‘기본사회’에 대해 많은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어느 영역에서 기본을 이룰 것인가? 어느 수준이 기본인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 재원은 만들 수 있는가’ 등등. 긍정의 입장도 있지만 의심의 눈초리도 매섭다. 그러나 우리가 적용해 온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 제도적으로 선을 긋고 시혜적 방식으로 관리하는 수준은 과거의 방식이 되었다. 이제는 ‘사회적 문제, 이웃의 어려움, 개인의 필요’를 적극적인 기본권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본사회는 ‘사회권’과 연결된다.(본보 2026.1.13. 필자 칼럼 참조)

 

이제 기본사회의 이미지를 현실화하고 작동시키는 힘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단계이다. ‘속도, 방향, 내용’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을 보장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계약’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완성된 형태는 있을 수 없다. 여건을 고려해 힘껏 만들어 갈 뿐이다. 가능한 영역에서부터 제도화도 관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본사회로의 이행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은 늘 떨리지만 가야 하는 길은 가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