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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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6.07.12
게재: 경향신문 | 입력 2026.07.12 19:57 | 수정 2026.07.12 22:03
필자: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이것은 미담인가, 괴담인가. 충북 제천시 한 농촌 마을의 유일한 동네의원이 문을 닫자 주민들이 힘을 모아 되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5만원씩 보태 출자금 5000만원을 마련해서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떠났던 의료진도 돌아왔다. 주민들은 부족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마을회관 건물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이 마을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2024년 전남 영암군에서도 동네의원이 폐업하자 마을 기금 5000만원을 투입해 낡은 건물을 고치고 지역 출신 의료진을 대도시에서 데려와 다시 운영한 사례가 있다. 충남 홍성군 홍동읍 주민들은 2015년부터 협동조합으로 동네의원을 운영해왔다. 홍동보건지소 공중보건의사(공보의)로 근무했던 의사가 지역에 남아 공동체와 함께 모범적 일차의료 모델을 만들어왔으며, 견학을 다녀온 이들도 많다. 필자도 그중 한 명이다. 하지만 작년 말 의사에게 건강 문제가 생기면서 의원 운영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기존 의사 월급보다 상당히 높은 수당을 제시하며 임시 의사 구인 공고를 냈지만, '시장가격'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 의사를 구하기 쉽지 않다. 주민들은 이 와중에도 '마을 주치의 선생님'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모금해서 회복을 지원했다.
농촌 마을 의원 폐원 막기 위해
출자금에 대출까지 받는 주민들
동네의원 없는 필수의료 '허상'
보건소를 일차의료 거점화해야
농촌 마을에서 소리소문 없이 동네의원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들 마을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구가 줄어들어 민간의원이 수익을 내며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점. 반면 여러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고 읍내 의료기관까지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은 매우 불편하다는 점이다.
지난 몇년간 '응급실·분만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으로 상징되는 필수의료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되면서 여러 정책들이 시행되었다. 대부분 응급, 수술, 중증질환 치료 등 병원의 입원 진료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즉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의 시설·장비를 확충하고 진료과별 전문의를 확보하는 데 치중되어 있다. 이렇게 사회적 관심이 큰 병원에 쏠리는 사이, 농촌 마을에서는 동네의원 이용조차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점은, 동네 일차의료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필수의료 체계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일 현재의 입원 수준이 지속된다면, 2040년에는 지금보다 1.6배 많은 입원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인구는 줄어들지만 의료 이용이 많은 고령자 숫자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맞춰 병원과 병상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만성질환 관리와 예방을 통해 입원 필요성 자체를 줄이는 것이 절실하다. 시행 100일이 지난 지역사회 통합돌봄에서도 가장 아쉬운 부분이 의료서비스다. 돌봄 수요가 큰 농촌지역일수록 연계할 수 있는 의료기관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역·필수의료의 완성, 의료·돌봄 통합의 완성은 최첨단 상급종합병원도, 럭셔리 실버타운도 아니다. 중증의료와 돌봄 사이에서 다리, 문지기, 안내자 역할을 하는 동네 일차의료기관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1980년대 '무의촌'을 없애겠다는 정책 목표와 함께 보건소·지소·진료소 체계가 확립되고 공보의 제도가 마련되었다. 이후 인구가 늘어나고 의료체계도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하면서, 보건소는 점차 의료보다는 공중보건·건강증진 기능에 집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금 무의촌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농촌 마을 보건지소를 지켜오던 공보의 숫자도 대폭 감소했다. 입법조사처 분석에 의하면 공보의가 배치되지 못한 읍면 보건지소가 2026년 현재 1023곳에 달하는데, 신규 배출되는 공보의 숫자는 매년 100명대에 불과해서 공백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농촌 마을까지 미치지 않는다. 공공과 역할 분담을 해야 할 민간의원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국가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는 활용할 수 있는 지역보건 인프라가 있다. 농촌지역 보건소가 일차의료의 거점이 될 수 있도록 진료 기능을 확대하고, 보건지소·보건진료소의 역할과 배치를 재설계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주민들이 직접 의사를 구하러 동분서주하고 마을회관 건물로 대출을 받아 의원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재명 정부가 지향하는 기본의료, 기본사회의 모습은 결코 아닐 것이다. 주민들이 마을에서 외래진료, 방문·재택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고, 큰 병원, 돌봄서비스를 이어주는 공공의원은 '기본사회'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본'이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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