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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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6.07.10
농어촌기본소득, '진짜 성장'을 위한 사회전략
황영모 전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라졌던 가게 문 열고 청년창업 증가
지원 규모보다 ‘돈 흐르는 방향’에 주목
생활서비스 유지되는 지역사회 만들어야
농어촌의 회생은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시대적 과제다. 농어촌의 침체와 쇠퇴를 그대로 둔 채, 나라의 미래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농어촌은 대한민국 산업 성장과 도시 발전의 든든한 배후이자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인구와 자원이 빠져 나간 지금은 ‘말라버린 과일’의 형상과 같다. 여러 정책과 재정 지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현실을 타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쪽에서는 이를 두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일갈한다. 심지어 사람도 적어 재정만 축내고 있으니 차제에 행정구역을 통폐합하자는 거친 주장까지 이어진다.
이 시점에서 농어촌의 혈류(血流)를 냉철하게 짚어보아야 한다. 그래야 농어촌 정책의 명분과 당위성을 바로 세울 수 있다. 현실에서는 대기업의 온라인 플랫폼과 유통망이 농어촌 구석구석 주민의 일상을 움직이고 있다. 공공이 재정을 지원해도 그 부는 지역에 머물지 못하고 역외로 빠져나간다. 지역에 돈이 마르니 골목상권이 무너졌다. 상권이 사라진 자리에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생활 서비스가 온전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독의 밑이 빠진 것’이 아니라 ‘항아리의 사방에 빨대가 빼곡히 꽂혀 외부로 빠져나가는 형국’에 가깝다. 이 구조적 문제를 조정하지 않으면 농촌의 생존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지역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현재 시범사업은 농어촌 주민 모두에게 월 15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한다. 주민의 소득 지지는 구매력을 바닥에서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사용처를 생활권 단위(읍과 면으로 구분)로 제한을 두었다. 수퍼마켓은 고사하고 식당 하나 없는 면에서는 사용도 여의치 못하다. 주민 입장에서 불편함이 많다.
그러나 시범사업에서 계획한 이 ‘의도된 불편’은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시범사업 몇 개월 만에 그 지역에 사라졌던 가게가 다시 문을 열었다. 사람이 없어 망한다던 농어촌 지역에 청년들의 창업도 늘고 있다. 소비처 제한이라는 번거로움이 가져온 긍정적 변화이다. 생활권에서 지역경제를 작동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시범사업(정책실험)을 통해 우리가 포착해야 할 점은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에 있지 않다. 핵심은 농어촌 지역사회에서 재화(돈)를 ‘어느 방향으로 흐르게 할 것인가’이다. 농어촌기본소득은 주민 개개인에게 무조건적인 유동성을 제공하여 실질 가처분소득에 기여한다. 이윤 중심의 시장을 따라 외부로 빠져나가는 돈의 발목을 잡는다. 돈을 지역 내부에 묶어두는 ‘경제적인 마찰력’으로 작동하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일정 수준의 소득 지원만으로 농촌에서의 생활을 온전히 지탱할 수 없다. 아이를 맡길 돌봄 시설이 없고 초등학교마저 문을 닫는다면 아이를 키울 수 없다. 장을 보러 타고 나갈 버스가 없고 아플 때 찾을 병원이 없다면 주민의 일상은 언제나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본소득이 개인의 필요는 물론 지역사회 수준의 ‘생활양식’을 만드는 단계로 기획해야 한다. 기본소득을 매개로 필수 생활 비용을 방어하고, 생활의 기반을 갖추는 ‘농어촌기본서비스’로 대응을 확장해야 한다. 농어촌기본서비스는 주거, 교통, 보건·의료, 돌봄, 먹거리, 에너지 등 삶의 필수 영역을 인프라로 촘촘하게 묶어내는 정책 체계다. 시장 논리로 서비스가 철수되더라도 주민의 삶을 지켜낼 ‘고정 장치’인 셈이다. 외부 변수에 휘둘리지 않는 ‘사회적 안정성’에 관한 것이다. 기본소득(마중물)은 농촌의 척박한 기본서비스 시장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은 다시 주민의 필수 생활 비용을 방어하는 기반으로 안착할 것이다. 기본소득이 기본서비스 수요를 만들어 낼 때, 비로소 농촌 주민의 생활 조건 전반이 안정될 수 있다.
이를 위한 지역사회의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지역의 현실에 맞는 ‘기본서비스’를 아래로부터 발굴해야 한다. 지역마다 인구 구조도, 대중교통 여건도, 의료 접근성도 모두 다르다. 어떤 지역은 수요응답형 콜버스와 같은 이동권 보장이 급선무일 수 있다. 다른 지역은 마을 단위 공동 급식과 먹거리 기본권 확보가 더 절실할 수 있다. 지역사회 스스로 주민의 결핍을 토대로 필요한 서비스 기준을 세워야 한다.
둘째, 주민과 시민사회의 정책 참여 거버넌스를 실질화해야 한다. 주민이 시혜적 수혜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생활의 필요에서 정책을 제안하고 예산 배정에 참여해야 한다. 주민자치회 등 풀뿌리 민주주의 체계를 활성화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 폐기나 재정 위기 상황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탄성(彈性)’을 기를 수 있다.
셋째, 사회연대경제 생태계도 비약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행정의 공급만으로 현장의 필요를 세밀하게 채우기 어렵다. 지역의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지역돌봄조직 등이 공공과 손을 잡아야 한다. 돌봄·의료·교통 등 서비스를 직접 생산하고 실행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공공성과 수익성의 조화로 지역 일자리를 만들고 상호보완 시너지를 내는 열쇠이다.
요컨대 ‘돈은 지역 안에서 돌고, 사람은 지역에 머물며, 생활서비스가 유지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농어촌이 기본사회로 나아갈 실체이다. 농어촌기본소득은 성장을 가로막는 ‘지출이나 비용’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분배를 통해 수요를 조직화하고, ‘진짜 성장’을 동시에 실현하는 유효한 ‘사회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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