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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와 지역복지: ‘돌봄 기본사회’로의 대전환
  • 등록일

    2026.05.18

게재: 월간 복지저널 2026년 5월호(통권 213호) | 복지타임즈 입력 2026.05.18 16:06
필자: 남현주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라지고 있는 가족, 지역에서 일어나는 돌봄의 비극

 

2026년 1월, 전남 장성에서 80대 치매 어머니를 25년간 홀로 부양해 온 60대 장남이 결국 어머니의 목숨을 빼앗은 사건이 발생했다. 농사를 지으며 어머니의 증상 악화와 경제적 부담을 홀로 감당해 온 그였으나, 4반세기를 부양하는 동안 장기요양보험이나 통합돌봄 등 공적 돌봄체계와의 실질적인 연계 정황은 좀처럼 확인되지 않는다.

“간병과 생활고를 더는 버티지 못했다”는 그의 절규는 결코 개별적 불운이 아니다. 간병 살인의 76%는 사회적 지지망이 끊긴 ‘독박 간병’ 상태에서 일어나고 있다. 돌봄은 더 이상 효심이라는 미덕으로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한 가족의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공포가 되어가고 있다.

 

이 비극의 이면에는 한국 사회의 거대한 구조적 균열이 자리 잡고 있다. 0.7명대의 저출생과 초고령사회 진입, 750만 가구에 달하는 1인 가구의 폭증은 전통적 돌봄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돌봄 수요는 폭발하는데 돌봄을 제공할 가족은 사라지는 ‘가위 모양의 격차’는 이제 우리의 일상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삶의 고통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지역’에서 벌어진다. 이것이 다가오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6.3 지방선거)가 ‘돌봄’이라는 화두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이유다.

 

 

흩어진 제도와 벌어지는 격차: ‘복지 분권의 역설’

 

장성 사례가 보여주듯, 비극은 제도가 없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도, 지방자치단체의 긴급돌봄도 이미 존재한다. 문제는 이 제도들이 서로 흩어진 채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각 부서가 자기 영역과 예산만을 관리하는 칸막이 행정은 여전히 견고하고, 그 사이에서 수술 후 퇴원한 노인은 장기요양 등급 심사와 서비스 계약을 위해 몇 주에서 몇 달을 대기한다. 치료가 끝났음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요양병원에 머무는 ‘사회적 입원’은 보건의료와 복지 전달체계의 단절이 낳은 비효율의 결과다.

 

이러한 분절은 지역 간 격차를 만나 한층 증폭된다. 2026년 3월 시행된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돌봄통합지원법)」의 지자체별 준비율을 보면, 광주·대전 등은 100%에 달했지만, 인천 등 일부 대도시는 52%에 그쳤고, 농어촌과의 격차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다. 재정자립도와 지자체장의 정책 의지에 따라 시민이 누리는 존엄의 크기가 달라지는 ‘복지 분권의 역설’이 현실화된 것이다.

보건복지부 시범사업 결과 통합돌봄이 제대로 작동할 경우 요양병원 입원율과 1인당 의료·요양비가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효과가 확인된 만큼, 돌봄이 작동하기만 하면 국민의 삶과 국가 재정 모두에 이롭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되었다. 문제는 그 작동의 수준이 거주 지역에 따라 너무나 불공평하다는 점이다.

 

여기에 서비스 공급의 90% 이상이 민간 영리 기관에 편중된 ‘시장화의 덫’이 더해진다. 2024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 규모는 16조 2000억 원으로 외형은 성장했으나, 공급의 절대다수를 영리 민간 기관이 담당하는 구조적 편중은 돌봄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와 고용 불안정으로 이어져 서비스 질의 상향 평준화를 가로막고 있다. 예산은 매년 늘어나는데, 시민의 돌봄 불안은 가중되는 역설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돌봄은 시민의 ‘기본권’이다: 기본사회의 정책적 지향

 

이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복지를 시혜적 구제에서 당당한 보편적 권리로 전환하는 ‘기본사회’로의 발상 전환이 시급하다. 기본사회란 모든 국민이 소득·계층·거주 지역에 관계없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최소한의 기본 조건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는 파편화된 기존 복지를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통합적 기본권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며, 그 한복판에 돌봄이 놓인다. 돌봄은 아동기부터 노년기까지 생애 전 주기에서 누구에게나 발생하는 ‘보편적 필요’이기에, 이를 시혜가 아닌 권리로 보장하는 ‘돌봄기본권’은 기본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토대다.

 

「대한민국헌법」 제10조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제34조는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권을 명시하고 있다. 돌봄기본권의 확립은 이러한 헌법적 가치의 자연스러운 시대적 확장이며, 그것을 제도적으로 실현하는 정책 형식이 바로 ‘기본돌봄’이다. 기본돌봄은 지역과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보장되어야 할 돌봄의 최저선이자, 기본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기본서비스다.

이러한 기본돌봄은 다음 네 가지 원칙 위에 설계되어야 한다. 첫째, 자산 조사나 소득 기준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보편성, 둘째, 가족의 희생이 아닌 시민의 권리로 이해되는 권리성, 셋째, 익숙한 지역사회 안에서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는 지역 기반성, 넷째, 보건의료·요양·주거·생활지원이 시민의 삶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통합성이다. 이러한 기본돌봄의 구상은 돌봄을 미래를 위한 ‘사회적 투자’로 재정의해 온 국제적 흐름과도 궤를 같이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즉시 실행해야 할 5대 핵심 정책 과제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선출될 지방자치단체장은 중앙의 지침만을 기다리는 행정 집행자를 넘어, 지역의 특성에 맞는 ‘돌봄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다음은 정책적 의지가 뒷받침될 때 중앙정부의 특별교부세·지역소멸대응기금과의 전략적 연계를 통해 즉시 실행 가능한 다섯 가지 과제다.

 

① 전국 최저기준을 상회하는 ‘지역 맞춤형 돌봄’ 설계

중앙정부가 설정한 보편적 권리의 하한선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디서나 누려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다. 그러나 실제 돌봄의 욕구는 대도시와 농어촌, 지역 인구 구조에 따라 현격히 다르다. 지방자치단체는 이 공통 기준 위에 지역의 인구 구조와 시민의 필요를 반영한 ‘지역최저기준’을 별도로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장의 책임을 명문화한 표준 조례를 제정하고 전담 부서를 설치하여 돌봄이 예산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② ‘원스톱 기본서비스 전달 허브’ 구축과 선제적 행정 혁신

정보와 접근성이 부족한 취약계층에게 기존의 신청주의 복지는 거대한 장벽이 될 수 있다.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단순한 민원 처리 창구가 아닌 복지, 의료, 행정이 통합된 ‘기본서비스 전달 허브’로 재편해야 한다. 서울의 ‘돌봄SOS센터’나 광주의 ‘돌봄매니저’ 사례처럼, 동 단위 일선 인력이 위기 징후를 먼저 포착하고 통합 판정 체계를 통해 한 번의 연결만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받는 ‘입구의 일원화’를 의무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일원화된 입구를 누가 통과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③ 장애인·정신질환자를 포함한 보편성의 실질적 보장

현행 돌봄통합지원법은 대상자로 노인뿐 아니라 장애인과 정신질환자를 명시하고 있으나, 정부의 초기 1단계 설계는 여전히 고령층 중심에 머물러 있다. 진정한 보편적 기본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가장 오랜 기간 사각지대에 머물러온 이들이 또다시 ‘다음 단계’로 미뤄지지 않아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도입기부터 장애인과 정신질환자를 포함한 ‘통합돌봄 준비 계획’을 시정 운영의 핵심 과제로 명시하고, 이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자립적으로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 보장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이렇게 확장된 보편적 대상을 지속가능하게 떠받치려면 공급 구조의 다원화가 필수다.

 

④ 사회연대경제와의 연계를 통한 ‘돌봄 공동생산’ 생태계 구축

정부의 직접 공급은 물리적 한계가 명확하며 영리 시장에만 돌봄을 맡기는 것은 서비스 질의 하락을 초래한다. 해결책은 사회적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주민자치회 등 지역의 자생적 조직들을 돌봄의 ‘공동생산자’로 세워 민관 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지역 주체들이 서비스 설계부터 평가까지 참여할 때 일상의 미세한 결까지 채워주는 ‘따뜻한 돌봄’이 가능해지며, 지역 자원이 안에서 순환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지역 돌봄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완성할 수 있다. 이처럼 시민이 돌봄의 공동생산자로 참여할 때, 지역복지는 비로소 ‘돌봄 민주주의’의 실질적 출발점에 서게 된다.

 

⑤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지능형 ‘스마트 돌봄’ 안전망 도입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돌봄 수요에 비해 현장의 전문 인력 부족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센서, AI 스피커, 돌봄 로봇 등을 활용한 지능형 모니터링 시스템을 지역단위에서 적극 도입해야 한다. 단순한 인력 대체를 넘어, 데이터로 위기 가구를 조기 발굴하고 돌봄 노동자의 부담을 줄여 서비스 질의 상향 평준화를 이끄는 지능형 안전망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과제는 선거용 공약 점검표가 아니다. 통합돌봄은 특정 정부의 사업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약속이며, 이번 지방선거로 시작되는 지자체장의 임기 4년은 통합돌봄 로드맵의 도입기와 안정기가 교차하는 결정적 시기와 맞물려 있다. 이번 선택이 향후 우리 돌봄 체계의 골격을 결정할 것이다.

 

 

‘돌봄 안심 생활권’과 돌봄 민주주의를 향하여

 

이 모든 과제 너머에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더 큰 그림이 있다. 미래의 지역복지는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단계를 넘어, 시민이 주체적으로 돌봄을 기획하고 참여하는 ‘돌봄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돌봄은 더 이상 일부 가정이 감당해야 할 사적인 고통이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가족의 희생에 기대어 버티는 지역사회로 남을 것인가, 누구도 돌봄의 공포 앞에 홀로 남겨지지 않는 ‘기본사회’로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분수령이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노년을 맞이하고 싶은가에 대한 해답은, 돌봄을 시민의 당당한 기본권으로 확립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적 결단과 실천에 달려 있다.

 

 

남현주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